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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ve over hygge, there’s a new Scandinavian lifestyle trend to embrace.
휘게를 넘어서는, 스칸디나비아에서 유행하는 새로운 생활양식이 있다.
Popularised over the past few years, the Danish ethos of hygge denotes momentary bliss and cosiness, but at its core aims for contentment at specific moments. But the lifestyle industry has moved on, and the Swedish principle lagom (pronounced: laaaw-gum) – with its virtue of moderation and balance – has been crowned the next ‘it word’ by the likes of Vogue and ELLE.
지난 수년간 유행했던 덴마크의 정신인 휘게(hygge)는 순간적인 행복과 아늑함을 나타내지만, 만족에 대한 핵심적인 목적은 특정한 순간에 있다. 하지만 생활양식 관련 산업은 이제 다른 곳으로 옮겨갔고, 보그와 엘르가 선호하는, 스웨덴의 한가지 원칙인 라곰(lagom)이 다음으로 '유행할 단어'라는 영예를 얻었다.
Lagom allows people to enjoy themselves, but stay healthy and content at the same time
라곰은 사람들이 즐겁게 지내도록 해주지만, 동시에 건강하고 만족하도록 해준다.
It makes sense that lagom is resonating with people across the globe, says Niels Eék, co-founder and psychologist behind wellbeing app Remente. “At one end, we are excessive in our work habits, connectivity and indulgences. On the other hand, we are advised to limit ourselves by trying a new fad diet or a trendy detox,” he said.
라곰이 전세계의 사람들에게 공감을 받고 있다는 것은 일리가 있다고 웰빙 앱 Remente를 후원하는 공동 설립자이자 심리학자인 니엘스 에크씨는 말한다. "한쪽 극단을 보면, 우리는 일하는 습관, 타인과의 연결, 탐닉 측면에서 너무 과도하죠. 다른 한편으론, 새롭게 유행하는 다이어트나 디톡스를 시도해서 스스로에게 제한을 가하라고 조언을 받기도 하죠." 그는 이렇게 말했다.
“In a world of contrasts and contradictory advice, lagom hits the middle – allowing people to enjoy themselves, but stay healthy and content at the same time.”
"대조적이고 상반된 조언을 하는 세상에서, 라곰은 그 중간을 들이받죠. 사람들이 즐겁게 지내도록 해주지만, 동시에 건강하고 만족하도록 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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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ut while this new global focus on Swedish lifestyle is flattering for Swedes, lagom isn’t a concept that can be easily wrapped into a marketing strategy.
하지만 이러한 새로운 전 세계적인 스웨덴 생활양식에 대한 주목은 스웨덴 국민들을 우쭐하게 하고있는 반면, 라곰은 쉽게 마케팅 전략으로 포장할 수 있는 개념이 아니다.
The first time I became fully aware of this ethos was when I moved to Sweden from the US more than seven years ago. My husband and I were invited to dinner at a friend’s home, which was sparsely decorated in neutral hues and light wood, with a throw rug here and there. Our host, Jörgen, was a professional violinist, and his other guests were accomplished musicians with various orchestras in Stockholm – a normal day for them could involve playing at the Nobel Prize ceremony.
처음 내가 이런 기풍에 대해 완전히 알게 되었을 때는 7년도 더 지난 미국에서 스웨덴으로 이주했던 시절이었다. 내 남편과 나는 친구집 저녁식사에 초대되었는데, 그 집은 중간색과 연한색깔의 나무로 드문드문 장식되어 있었고, 여기 저기에 작은 양탄자들이 놓여 있었다. 우리를 초대한 요르겐은 전문 바이올리니스트였는데 다른 손님들은 스톡홀름의 여러 오케스트라 소속의 뛰어난 음악가들이었다. 그들에게는 평범한 그냥 하루였겠지만, 노벨상 시상식에서 연주할수도 있을 정도의 멤버들이었다.
Nevertheless, as if coordinating with Jörgen’s sparsely decorated apartment, the unspoken dress code seemed to be well-worn jeans, flowing tops for the ladies and more form-fitting shirts for the men. With shoes parked by the door, we were all sporting socks.
그럼에도 불구하고, 요르겐이 드문드문 장식한 아파트와 조화를 이루기라도 했던 것처럼, 미리 얘기하지 않았던 드레스코드는 입어서 헤진 청바지 였던것 같았고, 여성들은 미끈하게 처진 상의를 입었고, 남성들은 더 몸에 꼭맞는 셔츠를 입고왔다. 문 옆에 신발을 벗어놓은 채, 우리 모두는 스포츠 양말을 신고 있었다.
But beyond the laidback vibe, there was something else in the air. As accomplished as the group was, there was no gratuitous peppering of achievements or divulging of personal information. The guests all fluently spoke an average of three languages each, yet were quick to dismiss their prowess because they weren’t native speakers of some of those languages.
하지만 한가롭고 느긋한 분위기 저편에는, 뭔가 다른 기운이 감돈다. 단체로 이뤄낸 것이므로, 성취에 대한 불필요한 공격이나 개인 정보의 발설이 없다. 모든 내빈들은 각자 평균 3개 국어를 하지만, 그 중 일부 언어에 대해서는 원어민이 아니므로 자신의 기량을 금방 일축해버린다.
The conversation ebbed and flowed – from their latest performances to current projects and travels – yet seemed to be subconsciously moderated by everyone at the table so it wasn’t too much or too little in any way. Filled with long stretches of silence, it dipped into a mental space that seemed perfectly comfortable for them but kept me itching to fill the void with some noise – any noise.
대화는 최근에 자신이 했던 연주에서부터 지금 진행하고 있는 프로젝트와 여행으로, 썰물처럼 빠져나가며 흘러갔다. 그럼에도, 잠재의식적으로 테이블에 함께 있던 모든 사람들에 의해 어떤 식으로든 너무 과하거나 너무 적지 않도록 중화되는것처럼 보였다. 계속된 정적으로 가득차 있었기 때문에, 그 사람들은 완전히 편안한 것으로 보였지만, 나에게는 계속 아무 소음이나 내서 빈 공간을 채우지 않고는 못배기게 했던 정신적인 공간을 일부 축내버렸다.
That was when lagom began to reveal itself to me as ‘appropriate group conduct’ – even among friends and colleagues who had known each other for years.
이것이 바로 '적절한 단체 행동'으로 라곰이 나에게 그 존재를 알리기 시작한 순간이었다. 심지어 수년간 서로 알고 지냈던 친구들과 동료들 사이에서도 말이다.
Etymologically, the word ‘lagom’ is an Old Norse form of the word ‘law’, and it also means ‘team’ in Swedish. But culturally, the roots of lagom are tied back to communal times of the Vikings, when they gathered around the fire after a hard day’s work and passed around horns filled with mead, a honey-fermented beverage. Everyone was expected to sip just their fair share so others could have enough to drink as well. This ‘laget om’ (‘sitting around the team’) has been shortened to ‘lagom’ over centuries.
어원학적으로, '라곰'이라는 단어는 '법'이라는 단어의 고대 스칸디나비아어의 형태이고, 스웨덴말로 '팀'이라는 의미도 있다. 하지만 문화적으로, 라곰의 기원은 바이킹들이 힘든 하루일을 마치고 불 주위에 모여서 벌꿀 양조술인, 벌꿀술로 가득차 있는 뿔을 서로에게 돌렸던 시절인, 바이킹의 공동체 시간으로 거슬러 올라갈 수 있다. 다른 사람들 또한 충분히 마실 수 있도록 모두들 자신의 적정 양만을 조금씩 마시게 되어 있었다. 이 '라겟 옴'('팀 주위에 둘러앉기')이 수세기에 걸쳐 '라곰'으로 줄여져왔다.
Often said to be untranslatable, lagom is usually described as the Goldilocks principle of ‘not too little, not too much, just right’, which implies everything in moderation. But the true reason it’s difficult to translate is because it mutates, changing meaning in different situations and within various contexts.
라곰은 종종 번역이 불가능하다고 말해왔는데, 대게 '너무 적지도 않고, 너무 많지도 않고, 딱 적당히'라고 하는 골디락스 법칙1)으로 묘사되는데, 이는 절제된 모든 것을 의미한다. 하지만 번역하기 어려운 진짜 이유는 서로 다른 상황과 다양한 맥락 안에서 의미가 바뀌면서 변형되기 때문이다.
* 역자 주 1) 동화 곰 세마리에 나오는 여자아이의 이름이 골디락스(Goldilocks)인데, 이 아이는 세개의 서로 다른 바구니에 담긴 포리지(오트밀에 우유나 물을 부어 걸쭉하게 끓인 음식)를 맛보게 되는데, 너무 뜨겁거나 너무 차갑지 않은 적당한 온도의 포리지를 선호하게 된다는 걸 알게된다. 이 개념은 다양한 분야의 학문에 응용되었다.
It could mean ‘appropriate’ in social settings, ‘moderation’ in food, ‘less is more’ in interior decor, ‘mindfulness’ in wellbeing, ‘sustainability’ in lifestyle choices and ‘logic’ in business dealings. All these carry a connotation of ‘optimal’ decision-making.
이는 사회적 분위기에서는 '적절하다'는 의미일 수도 있고, 음식에서는 '절제'를, 인테리어 꾸미기에서는 '덜하는게 더 좋다'를, 웰빙에서는 '유념하기'를, 생활양식을 선택하는데 있어서는 '지속가능성'을, 그리고 사업상 거래에서는 '타당성'을 의미한다. 이 모든것들은 '최적의' 의사결정이라는 함축된 의미를 수반한다.
Lagom in its most powerful form means that whatever contextual decision you make is the very best one for you or for the group you find yourself in.
가장 강력한 형태의 라곰은 어떤 맥락에서 한 의사결정도 당신 자신 혹은 당신이 속해있는 모임을 위해 가장 최선이라는 걸 의미한다.
For example, once while waiting at Stockholm Arlanda Airport for delayed luggage arriving from Lapland, my fellow passengers stood silently around the conveyor belt. Those travelling together shared a few words, but overall the air was devoid of conversation. In the US, I would have turned to my fellow passengers to banter loudly about the baggage delay. But here in Sweden, it seemed that stating the obvious through small talk was unnecessary.
예를 들어, 한번은 스톨홀름 아르난다 국제공항에서 라플란드로부터 도착하는 짐이 지연되어 기다리고 있는 도중에, 내 동료들은 조용하게 컨베이어 벨트 주위에 서 있었다. 함께 여행하는 그들은 몇가지 말들을 나눴지만, 대체적인 분위기는 대화가 전혀없었다. 만약 미국에서였다면, 나는 동료들에게 다가가서 수화물 지연에 대해 큰소리로 농담을 주고 받았을 것이다. 하지만 이곳 스웨덴에서는, 간단한 이야기를 통해 말할 필요도 없는 것을 말하는 것은 불필요한일 같아 보였다.
The physical and mental space that the passengers were keeping was lagom at play – a way of reducing stress in an already stressful situation, and not inconveniencing each other through excessive gestures or talking too much.
거기있던 승객들이 계속 머무르던 물리적이고 정신적인 공간이 바로 그 순간 작동하고 있던 라곰이었는데, 다시말해, 이미 스트레스를 받는 상황에서 스트레스를 줄이는 방법이며, 너무 과도한 몸동작이나 너무 많은 얘기를 통해 서로에게 불편을 끼치지 않는 것이다.
Returning to the Goldilocks principle, we are steered towards the heroine’s own perfect portions: the right chair, the right bowl of porridge, the right bed. But we never really consider Papa Bear or Mama Bear’s own perfect portions. Because in Sweden, their chairs, bowls and beds are also ‘lagom’ – optimal for them.
골디락스 법칙으로 되돌아가니, 우리는 여걸의 온전한 본인 몫으로 안내되었다. 즉, 적절한 의자, 적절한 포리지 사발, 적절한 침대이다. 하지만, 우리는 아빠곰이나 엄마곰 본인의 온전한 몫은 실제로 고려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스웨덴에서는 그들의 의자들, 사발들, 침대들도 그들에게 최적화한 '라곰'이기 때문이다.
My lagom state is not the same as your lagom state, but we enter joined spaces of recognition when we use the word because we can connect our individual ideals of what lagom means. For example, if I said the food was ‘lagom’ salted, in your mind, as the listener, you can envision the food perfectly salted to your own taste. My palate may prefer a saltier version than yours, but you fully understand the context.
나의 라곰 상태는 당신의 라곰 상태와 같지 않지만, 우리는 개인적인 생각과 라곰이 의미하는 바를 연결 할 수 있기 때문에, 이 단어를 사용할 때 우리는 인식하는 공간에 들어선다. 예를 들면, 만일 내가 어떤 음식이 당신의 마음 속에서 '라곰' 소금간이 되었다고 말했다면, 청자로서 당신은 스스로의 기호에 따라 온전하게 소금간이 된 그 음식을 그릴 수 있다. 내 미각이 당신의 미각보다 좀 더 소금간이 센 맛을 선호할 수 있지만, 당신은 맥략을 완전히 이해한다.
Lagom wants to push us to a space of individual contentment while creating harmony within whatever groups or societies we find ourselves. In an ideal world, this would work perfectly. But it is human nature to feel envious – and this is why some Swedes process lagom with mixed feelings.
라곰은 우리가 속한 어떤 모임이나 사회 안에서 조화롭게 지내는 동안, 개인적인 기쁨을 찾는 공간으로 가라고 우리를 강요하다시피 하고 싶어한다. 이상적인 세계에서, 이것은 완벽하게 작동할 것이다. 하지만, 질투를 느끼는 것이 인간의 본성이며, 이것이 일부 스웨덴 사람들이 복합적인 감정을 가지고 라곰을 처리하는 이유이다.
Since one person’s lagom isn’t exactly the same as another’s, a negative side of lagom can manifest within group settings. This side insists that people conform to ensure harmony and not bring their individual levels of lagom into the group because it can cause jealousy and breed resentment.
한 사람의 라곰이 정확히 다른 사람의 그것과 같을 수 없기 때문에, 부정적인 측면의 라곰이 단체 환경 내에서 나타날 수 있다. 질투를 부르고 억울함을 기를 수 있기 때문에, 이러한 측면은, 조화로움을 확보하기 위해 사람들이 규칙에 따라야 하고, 그들 자신의 라곰 수준을 단체에 적용하면 안된다고 주장한다.
Lagom wants to push us to a space of individual contentment while creating harmony within groups
라곰은 우리가 다른 사람들과 조화롭게 지내는 동안, 개인적인 기쁨을 찾는 공간으로 가라고 우리를 강요하다시피 한다.
The term’s usage has even evolved because of this to also mean ‘uninspiring’ and ‘boring’. And so many Swedes want to disassociate themselves from the word. There’s even a hashtag #NoMoreLagom.
이 때문에 심지어 이 용어의 용례가 '시시한'과 '지루한'이라는 의미로도 진화 해왔다. 그리고 많은 스웨덴 사람들은 자신들을 이 단어와 관계를 끊고싶어한다. 심지어 #NoMoreLagom (라곰은 이제그만) 이라는 해쉬태크도 있다.
Nevertheless, instead of looking at lagom as just ‘moderation’, which carries with it more blasé connotations like middle-of-the-road, mediocre or austere, re-centring lagom back to its optimal core carries a more holistic view of the choices we make in our lives.
그럼에도, 라곰을 단지 중도의, 보통밖에 안되는, 혹은 소박하다는 의미와 같이 심드렁한 함축적 의미를 전하는 '절제'로 바라보는 대신, 우리가 삶에서 행하는 선택들의 더 전체론적인 견해를 전달하는 최적화된 핵심부로 라곰을 되돌려보내야 한다.
“Lagom teaches us how to avoid both excess and extreme limitation, allowing us to better understand what makes us happy and what works for our own, unique, mental wellbeing,” Eék said. “By adopting a lagom mindset, we teach ourselves to avoid extremes of mood or feeling.”
"라곰은 우리를 행복하게 하는 것이 무엇인지와 우리 자신의 독특한 정신적 행복에 뭐가 잘 통하는를 더 잘 이해하게 해주면서, 동시에 우리가 어떻게 하면 과도함과 극단적 한계를 피할 수 있는지 알려주죠." 에크씨는 이렇게 설명했다. "라곰 사고방식을 채택함으로써, 우리는 스스로에게 기분이나 느낌의 양 극단을 피하라고 가르치죠."
So, the next time you find yourself travelling around Sweden and are met with long stretches of silence and measured responses, chances are it has absolutely nothing to do with you and you’ve encountered lagom in action.
그래서, 다음에 당신이 스웨덴 주위를 여행하고 있고 계속된 정적과 신중한 반응을 마주한다면, 그건 당신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고 라곰이 작동하고 있는 걸 맞닥뜨린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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