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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7.07.04 :: The German village that changed the war(전쟁을 변화시킨 독일의 마을)
Twelve thousand people once worked on large-scale rockets and the first ever cruise missiles at Peenemünde (Credit: robertharding/Alamy) 한때 약 12,000명의 사람들이 사상 최초의 순항 미사일과 거대한 크기의 로켓에 매달리고 있었다.
Around 2,500 concentration camp prisoners were forced to build rockets that would devastate their homelands (Credit: alex havret/Alamy) 약 2,500명의 강제 수용소 죄수들이 자신의 고국을 황폐화시킬 로켓생산을 돕도록 동원되었다. | |||
Around the same time, in summer 1943, British Intelligence realised the importance of Peenemünde. Reconnaissance flights and aerial photographs pointed to the development and production of German long-range weapons ‒ something that had to be stopped. On the night of 17 August, the Royal Airforce carried out Operation Hydra, the largest British action against a single target during WWII. Although the bombing was largely unsuccessful, it did delay production and force it to move underground to Mittelwerk in central Germany. 대략 비슷한 시점인 1943년 여름, 영국 정보 기관은 페네뮌데의 중요성을 깨달았다. 정찰비행과 항공사진으로 독일이 장거리 무기를 개발하고 생산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냈고, 이것은 막아내야만 했다. 8월 17일 밤, 영국공군은 2차 세계대전 중에 단일 목표물에 대한 작전 중 가장 규모가 컸던 히드라(Hydra) 작전을 수행했다. 폭격은 거의 성공적이지 못했음에도 불구하고, 이 폭격으로 인해 생산이 지연되고 이들 무기를 독일 중심부에 위치한 지하에 위치한 미텔베르크[1]로 옮기게 만들었다. In 1944, Hitler realised his miscalculation and expressed his regret at not having approved the project sooner to Dornberger: “I have had to apologise only to two men in my whole life. The first was Field Marshal von Brauchitsch. I did not listen to him when he told me again and again how important your research was. The second man is yourself.” 1944년, 히틀러는 자신이 잘못 판단했음을 깨닫고 이 프로젝트를 도른베르거에게 더 빨리 승인해주지 않은 것을 후회하며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나는 내 인생에서 오직 두 사람에게만은 사과를 했어야 했다. 첫번째는 피엘트 마샬 폰 브라우히취였다. 나는 그가 나에게 당신의 연구가 얼마나 중요한지 반복해서 얘기했을 때 귀담아 듣지 않았다. 그리고 두번째는 바로 당신이다.” [1] 역자주 : 영어로 표현하면 Central works이며, 2차 세계대전시 연합국의 폭격을 피하기 위해 독일이 지하에 만든 무기생산공장을 의미한다 | |||
In 1944, Hitler expressed regret at having miscalculated the importance of using rockets to win the war (Credit: Paul Popper/Popperfoto/Getty Images) 1944년, 히틀러는 전쟁에서 승리하기 위해 로켓을 사용하는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잘못 판단했음을 후회했다. | |||
But the end of the war did not spell the end of the work carried out at Peenemünde. After the war, the Allies sought to acquire the technology contained within the A-4/V-2, the first missile to launch a large warhead along a predetermined territory. German rocket scientists and engineers who worked for the Nazi regime were offered citizenship and jobs in the USSR, Great Britain, France and the US. Most famously, von Braun went on to live in the US and work for Nasa, where he developed the rockets that launched the Apollo-manned lunar landings. In addition to impacting the space race and guided missiles of the Cold War, the research and development performed at Peenemünde informed all later developments in rocket engineering. 하지만 전쟁이 끝난다고 해서 페네뮌데에서 수행한 일이 끝나는 것은 아니었다. 전쟁이 끝나자, 연합국은 미리 정해진 구역을 따라가는 커다란 탄두를 쏘아 올린 최초의 미사일인 A-4/V-2에 탑재된 기술을 차지하려고 했다. 나치정권을 위해 일했던 독일 로켓 과학자들과 엔지니어들에게 소련, 영국, 프랑스, 미국에서의 시민권과 일자리가 제공되었다. 가장 유명하게는 폰 브라운은 미국을 택하고 미항공우주국(NASA)에서 일하기 위한 절차를 진행하였고, 거기서 그는 달에 착륙하는 유인우주선인 아폴로호를 발사했다. 냉전시기의 우주개발 경쟁과 유도미사일에 영향을 주었을 뿐만 아니라, 페네뮌데에서 수행한 이 연구개발은 로켓 엔지니어링에서 벌어진 모든 개발에 영향을 미쳤다. Perhaps, however, the most important legacy of Peenemünde is the reflections it raises about the impact of technology, and the role of scientists and engineers within a wider context. Museum curator Dr Philipp Aumann told me, “Progress and innovation are a key aspect of modern societies, and we as a society have an influence on what gets researched and developed.” 하지만, 아마도 가장 중요한 페네뮌데의 유산은 기술의 영향력과 과학자와 엔지니어의 역할을 더 넓은 맥락에서 상승시켰다는 점이다. 박물관 큐레이터 필립 아우만 박사는 나에게 말했다. “발전과 혁신은 현대 사회의 중요한 측면인데, 사회적으로 우리는 연구와 개발이 진행되는 것에 영향을 끼친다.”
As I moved through the site, with its multiple layers of history and complexities, I found myself becoming more enmeshed in its contradictions and questions. Peenemünde reflects the darkest and most illuminating aspects of humanity, making it relevant for all of us today. 나는 여러 역사와 복잡성으로 가득 차있는 그 공장 이곳 저곳을 지나가며 그 장소의 모순과 질문들에 휘말려 점점 곤란해지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페네뮌데는 오늘날의 우리 모두와 연관시키면서 가장 어둡고 가장 빛나는 측면을 반영하고 있는 것이다. Peenemünde’s continued relevance has inspired international artists such as Catalonian painter Gregorio Iglesias Mayo and Mexican-American print artist Miguel A Aragón to interact with the site. Mayo, who painted a 121ft x 40ft canvas in the museum’s courtyard, which captures the human dimension in relation to technical apparatus on a grand scale, has stated that Peenemünde is a “place where once there had also been a concentration camp, a place of research, creation, intelligence, weakness, contrasts, frustration, helplessness and the fight for the most rudimentary things.” 페네뮌데에 지속 되어온 관련성은 카탈루냐 화가인 그레고리오 이글레시아스 마요와 멕시코계 미국인 프린트 아티스트인 미구엘 에이 아라곤과 같은 국제적인 예술가들에게 영감을 불러일으켜 이 장소와 교류하게 했다. 박물관의 앞마당에 36미터 x 12미터 캔버스 그림(거대한 규모로 기계장치에 관한 인간의 관점을 그려냈다)을 그린 마요는 페네뮌데가 “강제수용소가 있었던 장소이면서 동시에 연구, 창조, 지성, 약함, 대조, 실망, 무기력함, 그리고 가장 기본적인 것들에 대한 투쟁의 장소”라고 언급했다. | |||
The research conducted at Peenemünde impacted the future of weapons of mass destruction and space travel (Credit: Madhvi Ramani) 페네뮌데에서 수행한 이 연구는 대량살상무기와 우주여행의 미래에도 영향을 끼쳤다. | |||
As well as using visual art as a way to process history, the museum hosts concerts by The Baltic Sea Philharmonic in the former turbine hall of the power station. The site, which once threatened to tear Europe apart, now brings together leading musicians from the region’s 10 countries. In 2002, the museum was awarded the Coventry Cross of Nails for its efforts towards reconciliation and peace. 이 박물관은 역사를 검토하는 방법으로 시각예술을 사용할 뿐만 아니라 예전 발전소의 터빈이 위치한 공간에서 발틱해 교향악단이 연주하는 콘서트를 개최한다. 한때 유럽을 찢어버리겠다고 협박하던 그 장소가 이제 그 지역의 10개국으로부터 선두를 달리고 있는 음악인들을 같이 불러들이고 있다. 2002년, 이 박물관은 화해와 평화에 대한 노력으로 Coventry Cross of Nails를 받았다. Now, every time I visit sunny Usedom, Peenemünde attracts me to its many shades of light and grey. 이제 화창한 우제돔 섬을 방문할 때마다, 페네뮌데는 나를 매료시켜 빛과 회색으로 가득한 수많은 구석진 곳으로 데리고 간다. * Please find original article in the following link(원본은 하기 링크를 참조하세요): http://www.bbc.com/travel/story/20170629-the-german-village-that-changed-the-war Join over three million BBC Travel fans by liking us on Facebook, or follow us on Twitter and Instagram. If you liked this story, sign up for the weekly bbc.com features newsletter called "If You Only Read 6 Things This Week". A handpicked selection of stories from BBC Future, Earth, Culture, Capital and Travel, delivered to your inbox every Friday. |